Book/책

임용한, '세상의 모든 전략은 전쟁에서 탄생했다' 책 요약 정리 그리고 생각

데브렉스 2013. 1. 4. 00:00
반응형

[느낌]

책속에서 다양한 전투를 소개하고 그 선투속에서 사용되어진 전략들을 소개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전략들을 실질적으로 창안하고 지휘한 지휘자(리더) 역시 소개 되어있다. 다양한 전략들이 각 전투에서 사용되었으며, 승리로 이끌고 있다. 이러한 전략들은 21세기 현재 최첨단 디지털 문명속에 살고 있는 우리의 삶에도 그리고 기업에 적용 할 수 있다. 인생에 전략을 세우고 다양한 각도로 접근해 승리를 쟁취하자 !!

[요약 정리]

명장들에게는공통점이 있다. 모두 40~50대에 가장 눈부신 활약을 보였다는 것. 카이사르는 부와 권력을 엉ㄷ은 뒤 41세의 나이에 갈리아 정복에 새롭게 도전했으며, 아이젠하위가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성공시킨 것은 54세 때였다. 이들이 블혹을 넘긴 나이에 뛰어난 전략과 전술을 구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충실한 이론에 더해 수많은 실전을 통해 이론들을 직접 체득해 40~50대에서야 겨우 실력을 발휘할 조건이 갖추었기 때문이다.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서른을 넘으면 안정을 추구하고, 마흔을 넘기면 보신만을 생각해 웅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30대는 물론 40대도 아직 더 치열하게 싸워야할 때 이다.

 

- 마라톤 전투

  마라톤 전투로부터 시작된 페르시아 전쟁이 동양의 침공에서 서구를 지킨 전쟁으로 독재와 전체주의에 대한 민주주의의 승리로 포장된 덕분이다. 페르시아 전쟁 직후부터 20세기 까지 서구 역사가들은 소국인 그리스가 자신들보다 1만 배가 넘는 인구를 보유한  페르시아를 이길 수 있었던 비결을 민주주의 덕분이라고 믿었다. 마라톤 전투는 민주주의가 독재와 파시즘보다 강하며, 자발적 시민정신이 타율적이며 경직된 인간보다 강하다는 증거가 되었다. 하지만 그리스 민주주의와 시민정신의 실체는 다르다. 페르시아 전쟁은 독재 국가와 자유시민의 싸움이 아니라. 공정함(페르시아)과 야비함(그리스)의 대결이었다. 이런 정신 상태에 국력은 1만분의 1 수주인 나라가 어떻게 페르시아를 이길 수 있었을까 ? 오늘날 우리는 이 저쟁을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이라고 언급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그리스라는 국가는 없었다. 그리스는 수백 개 플리스의 모임이었다. 페르시아군이 도래하자 폴리스는 항복하자는 도시와 싸우자는 도시로 분열되었다.

  마라톤 전투가 끝난 직후 아테네 시민에게 한시 바삐 승리의 소식을 알리기 위해 필리피데스라는 병사가 아테네로 파견되었다. 그는 기쁜 마음에 너무 열심히 달린 나머지 아테네에 도착하자마자 우리가 이겼노라는 말을 남기고 쓰러져 죽었다고 한다. 이 사건을 기념해서 마라톤 평야에서 아테네까지의 거리인 약 42킬로미터를 달리는 경주가 탄생했다.필리피데스는 실존 인물이지만 그가 달린 거리도 목적도 전해지는 야기와는 다르다. 아테네 최고의 달리기 선수였던 그는 마라톤 전투가 벌어지기 전 스파르타에 원병을 청하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스파르타로 달렸다. 그 거리는 무려 225킬로미터에 달한다. 그는 이 거리를 단 이틀만에 주파했고 죽지도 않았다. 프랑스의 언어학자 미셀 브레알이 이 사건에서 영감을 얻어 마라톤경기를 제안했다. 1986년 최초의 근대 올림픽인 아테네 올림픽에 마라톤이 포함되었다. 하지만 군대의 달리기는 국제평화를 모토로 하는 올림픽과는 이미지가 맞지 않다. 이 때문에 필리피데스의 전설로 대체된것이 아닌가 싶다.

  페르시아는 보유한 자원을 적에 따라 적절하게 조합해서 특성화하는 시스템이 없었다. 이런 태도는 상태에 맞춰 적정한 전술과 편성을 구성해서 최대의 효율을 추구하는 전술을 포기하고, 물량공세와 우연에 기대는 방식이었다. 그렇기에 패배할 수 밖에 없다. 비대한 조직은 필연적으로 조직 운영을 위한 부가적인 요소를 대량으로 생산해서 사업 현장의 집중도오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그래서 대기업이 특화한 기업에 패배하고, 대형병원이 전문병원에 밀리는 사례를 종종 볼 수 있다.

 

- 무적함대  (거시적 타당성의 함정)

  오랫동안 중국이 절대강자로 군림해온 동양사회는 영원히 변치 않은 것에 대한 기대와. 한번 최강이면 영원한 최강이라는 믿음이 상대적으로 강하다. 반며에 과거 유럽은 서로 다른 민족과 국가로 분할되어 전쟁이 잦고, 승패도 엎치락 뒤치락했다. 극적인 역전도 많았다. 무적의 로마제국을 건설했던 이탈리아는 로마 시대 이후로는 전쟁을 못하는 나라로 전략. 17~20세기에 이탈리아군은 여러 전쟁에서 온갖 망신을 당했다. 프랑스는 그 어느 국가보다도 극적인 승리와 패배 사이를 오르내렸다. 스페인은 단 한 번 유럽을 강타하고 긴 침묵에 들어갔다. 이런 경험이 절대강자도 절대약자도 없다는 개념을 자연스럽게 유럽 국가와 사회에 심어준것 같다. 끊임없는 경쟁과 역전의 경험은 과감한 도전을 낳았고 무기와 군사기술이 발달하면서 도전정신은 더욱 강렬해졌다.

  영국의 엘리자베스1세는 해적들에게 작위를 줘 이들을 기사와 총독으로 임명했으며, 심지어 정규군으로 까지 편입하면서 그들을 독려했다. 이것이 유명한 '캐리비안의 해적'이다. 해적들은 영화에서처럼 카리브 해에서만 출몰하는게 아니다. 아메리카에서 유럽 연안까지 스페인의 배와 항구가 있는 모든 곳에서 등장했다. 해적왕 드레이크는 종종 포르투갈 해안까지 상륙하곤 했다.

 

- 7년 전쟁 (이론과 실전을 결합하면 전략이 보인다)

  훗날 어느 대위가 프리드리히 2세에게 '폐하처럼 훌륭한 전략가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물었다. 왕은 전쟁사를 열심히 공부하라고 말했따. 나중에 나폴레옹도 똑같은 질문을 받고 '전쟁사를 공부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라고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 몽고메리 원수의 대답역시 같았다. 그러자 대위는 갸우뚱하더니 자신은 그런 이론보다는 실전 경험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왕은 이렇게 말했따. '우리 부대에 전투를 60회나 치른 노새가 두 마리가 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도 노새다'

 

- 크라곤자 산 전투 (천재는 변화와 자기계발 욕구에서 나타난다)

  사막의 여우 롬멜은 이 명칭이 거의 고유명사처럼 되었을 정도로 유명한 장군이다. 많은 사람들이 롬멜의 전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의 전술을 '도박' 내지는 '상식을 뛰어넘는' '허를찌르는' 작전으로 해석하기 때ㅜㅁㄴ이다. 사실 롬멜이야말로 철저하게 상식과 합리성에 기초한 사람이다.

 

- 나폴레옹 전쟁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야 한다)

  통조림 발명의 공로자 나폴레옹, 1790년 나폴레옹은 음식물의 장기 보관이 가능한 방법을 발견하는 사람에게 1만 2,000 프랑을 지급하겠다는 현상 공모를 내걸었다. 지금 화폐로 1억원이 넘는 돈 10년 지난 1800년 파리에서 제과점을 운영하던 니콜라 아페르라는 사람이 나폴레옹을 찾아왔다. 아페르가 가지고 온 병 속에는 고기와 야채를 섞어 조리한 음식이 신선한 상태로 들어 있었다. 그 음식은 3주 전에 만들어진 것이었다. 음식물의 신선도를 확인한 나폴레오은 크게 감동을 받았고, 즉석에서 상금을 지급했다. 아페르의 발명품은 통조림이 아닌 병조림이었다. 고기와 야채, 달걀등을 섞어 적당히 칼로리와 영양소를 맞춤 음식을 병에 넣고 밀봉한 뒤 끊는 물에 넣어 삶아낸 것이었다. 병마개로는 코르크를 사용했다. 지금 생각하면 간단한 방법 같지만 아직 세균의 존재도 모르고, 음식이 부패하는 원리도 알지 못하던 시절이라 그야말로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찾아낸 방법이었다. 아페르는 나폴레옹이 현상 공모를 하기 전부터 음식 보관법을 연구 했는데, 이 방법을 찾아내는 데 무려 15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하지만 병조림은 나폴레옹 군대에서는 실용화되지 못했다. 무겁고 잘 깨졌으며, 음식물의 보존 상태도 상각보다 좋지 않았다. 이 불편한 병조림을 실용적인 통조림으로 개량한 나라는 나폴레옹의 숙적 영국이었다. 누군가가 깨지기 쉬운 병 대신에 얇은 철판으로 만든 통을 사용하는 방법을 고안해냈고 그 아이디어는 즉시 채택되었다. 영국에 최초의 통조림 공장이 세워진 1813년 이후 통조림, 즉 인스턴트식품이 세상에 퍼지기 시작했다.

  나폴레옹뿐만 아니라 수천 년간 전쟁터의 모든 장수들이 갈망했던 것은 식료품의 장기 보관이 아니라 조리가 필요 없이 바로 먹을 수 있는 즉석음식, 즉 효율성이었다.

 

- 절령 전투 (현장을 모르는 분석은 독이다)

  인간은 세 가지 방법으로 불쾌함에 대처한다. 1번째 외면이다. 2번째 한두 사람의 실수나 사소한 잘못, 혹은 우연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치부하고 넘어가는 것 3번째 반성하고 분석하는 척하면서 기계적이고 빤한 결론을 가져다 붙이고 빠져나가는 방법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