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플래트닝 생각의 형태 / 닉 수재니스 지음, 배충효 옮김 (UNFLATTENING / Nick Sousanis)


작가 소개

월터 닉 수재니스는 학자, 예술비평가, 이자 만화가다. 현재 TheDetroiter.com의 공동 창업자이고 그는 처음으로 콜롬비아 대학 학위 논문을 만화 형태로 작성한 인물이다. 그리고 그는 교육의 도구 로서의 만화가 주는 힘을 믿는 사람이다.

Walter Nickell (Nick) Sousanis is a scholar, art critic, and cartoonist; a co-founder of the TheDetroiter.com, he is also the first person at Columbia University to write a dissertation(대학 학위 논문) entirely in a comic book format. Sousanis believes that comics are powerful teaching tools

- 참고 Wikipedia


책 소개

서양에서 문자는 이미지를 넘는 뿌리깊은 최고의 도구이다. 문자와 이미지가 불가분한 관계의 동등한 지휘를 가진 도구로서 있다면 어떤 힘을 발휘 할까? 글과 그림이 공존 하는 것은 만화. 언플레트닝은 생각의 시각화의 실험이다. 닉 수재니스 독자에게 사람의 지식 생성을 위해 뛰어난 그래픽 예술과 깊은 연구를 제공함으로서 전통적인 학문 담론 형태를 거부한다.

언플래트닝은 좁고 융통성없는 생각들 즉 평면화라 불리는 나쁜  영향을 그래픽 혁명과 끊임없는 형태 운동을 통해 대응한다. 2차원 세상 플랫랜드 사람들은 위 아래를 알지 못하는데, 이와같이 우리들도 우리가 현재가진 마음의 틀의 경계 넘어를 보지 못한다. 녹아내린 단어와 이미지들은 새로운 지식의 형태를 만든다. 언플래트닝은 우리에게 우리가 가둬버린 생각의 형태를 뛰어넘어 접근 할 수 있도록 가르친다

The primacy(최고) of words over images has deep roots in Western culture. But what if the two are inextricably(불가분하게) linked, equal partners in meaning-making? Written and drawn entirely as comics, Unflattening is an experiment in visual thinking. Nick Sousanis defies(반항하다) conventional forms of scholarly discourse(담론) to offer readers both a stunning work of graphic art and a serious inquiry(연구,탐구) into the ways humans construct knowledge. 

Unflattening is an insurrection against the fixed viewpoint. Weaving together diverse ways of seeing drawn from science, philosophy, art, literature, and mythology, it uses the collage-like capacity of comics to show that perception is always an active process of incorporating and reevaluating different vantage points. While its vibrant, constantly morphing images occasionally serve as illustrations of text, they more often connect in nonlinear fashion to other visual references throughout the book. They become allusions, allegories, and motifs, pitting realism against abstraction and making us aware that more meets the eye than is presented on the page.

In its graphic innovations and restless shape-shifting, Unflattening is meant to counteract(대응하다) the type of narrow, rigid(융통성없는) thinking that Sousanis calls “flatness.” Just as the two-dimensional inhabitants of Edwin A. Abbott’s novella Flatland could not fathom(헤아리다) the concept of “upwards,” Sousanis says, we are often unable to see past the boundaries of our current frame of mind. Fusing(녹아내린) words and images to produce new forms of knowledge, Unflattening teaches us how to access modes of understanding beyond what we normally apprehend(체포하다).

- 참고 Harvard Press


독서후 느낌

영화 매트릭스에서 봤던 기계에 지배당한 인간세상의 현실. 사실 우리의 세상이 이미 매트릭스의 현실이 아닐까 한다. 단조로워 지고 새로운 관점에 눈을 뜨지 못한체 일차원적 사고와 행동을 따르는 인간. 비판적 차원이 결여된 채 같은 자리 같은 목소리를 내는 인간. 태어나 걸음마를 땔때부터 정해진 틀과 룰 트랙을 따라 이동과 행동을 하게 하고, 일방적인 주입식 정보로 같은 사람이 되도록 만드는 시스템. 이러한 시스템은 인간을 계량화 하고 데이터로 전환해 분류 하고 있다. 책에서는 언어와 이미지가 가진 단점을 극복한 만화라는 도구를 활용해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 머리속 생각을 기록하기 위해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보다 깊은 이해를 추구하고 그 과정을 통해 또 다른 차원의 생각을 얻기 위해 역동적인 놀이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상상하자. 질문하고 관찰하고 새로운 발걸음을 옮길때 우리를 옭가매고 있던 꼭두각시 줄을 발견 하게 될 것이다. 벡터 에너지의 덩어리인 우리 인간은 언제든 무엇이든 변할 수 있는 발전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표준화에 나를 가두지 말고 변화 무쌍한 다양한 관점을 가지고 세상을 향해 눈을 뜨자.


챕터별 정리 및 느낌

단조로움: 시스템에 맞춰 단조로워진 인간들

영화 매트릭스에서 봤던 기계에 지배당한 인간세상의 현실. 인간은 기계를 위한 에너지 공급 수단으로써 번식되고 틀에 맞춰 자라나고 통제된다. 사실 우리의 세상이 이미 매트릭스의 현실이 아닐까? 단조로워진 인간. 일차원적 사고와 행동을 따르는 인간. 비판적 차원이 결여된 채 같은 자리 같은 목소리를 내는 인간. 태어나 걸음마를 땔때부터 정해진 틀과 룰 트랙을 따라 이동하고 행동 하도록 배우는 시스템. 일방적인 주입식 정보로 같은 사람이 되도록 만드는 시스템. 그렇게 생산되어진 인간을 계량화 하고 데이터로 전환해 분류한다. 누구나 대체 가능한 인간으로 규격화 된다. 인간은 점점 사라져간다.


플랫랜드: 새로운 관점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

우리는 현재 3차원에 산다. 만약 우리가 2차원 공간에서 살고 있다면 평면 속의 움직임이 우리의 관점이 될 것이고 평면 밖의 세상 북과 남쪽은 있어도 위와 아래는 생각 할 수 가 없다. 우리의 시선은 평면에만 고정 되 어 있을테니 말이다. 애드윈 애벗의 소설 플랫랜드에 등장하는 평면 공간의 플래랜드 주민 이들은 2차원 세상에 거주하는 사람들이다. 1차원 공간의 라인랜드는 2차원에서 보는 관점을 이해하지 못한다. 또한 플랫랜드 사람들은 3차원 세계의 세상을 이해하지 못한다. 또한 3차원 세계의 사람들은 그 다음 차원을 상상하지 못한다. 이처럼 우리는 관점의 한계에 갇혀 있다.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한체. 뿌리 깊은 패턴들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정신적인 충격이 필요하다. 어떤 파열을 경험하면 그로 인해 기존의 경계가 훤히 드러나고 한게를 추월 할 수 있는 수단도 나타난다. 그리고 새롭게 눈을 뜬다.

'인간성이 위협 받는 것 같을 때마다 나는 늘 신화 속 페르세우스처럼 다른 공간으로 날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이성적 세계나 꿈속으로 도망치자는 말이 아니다. 접근 방식을 달리 하자는 뜻이다. 과거와 다른 시각, 다른 논리로 세상을 바라보고 새로운 방법으로 검증에 나서는 것이다.' 쿠바 출신 이탈리아 소설가 이탈로 칼비노


다양한 관점의 중요성: 하나의 관점으로선 틀을 깨지 못한다.

하나의 관점으로는 진실에 다가가기 힘들다. 다양한 관점을 통해서 그 진실을 추산할 수 있게 된다. 2처년전 알렌산드리아 수학자 에라토스테네스가 둥근 지구를 같은 시간 다른 위치에서의 기둥에 비친 그림자의 길이를 측정함으로 알렉산드리아와 시에네 사이의 변위각을 알아냈고 (두 지역 사이의 원주각) 두 지역의 거리를 통해 지구의 둘레를 정확히 측정했다. 두지점, 즉 두눈이 연결되면서 시야가 확장되고 지구를 바라 보는 우리의 관점이 달라졌다. 천동설을 믿고 따르던 사람들은 관찰된 현상들을 이상적인 우주관에 끼워 맞추기 위해 전례 없는 기발한 모델을 만들고 원안에 다른 원을 그려가며 행성의 운동 궤도를 그려넣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성을 가정함으로 관점을 바꾸었다. 정체되어있던 사고 체계를 완전히 무너뜨렸고 그 파장은 계속해서 밖으로 번져나갔다.

멀리 혹은 가깝고 세밀하게 측정하기 위해 고안한 강력한 관측도구가 사람을 전문화하게 만든 동시에 시선 역시 목표에 단단히 고정되었다. 우리의 이해는 확장되었지만 고정된 관점은 다른 가능성을 보지 못하게 하였다. 다른 세계를 보기위해서는 다른 방식으로 다른 각도에서 접근해야한다. 여러 관점의 교류를 통해 더욱 포괄적인 이해의 가능성이 열린다. 논쟁은 전쟁이 아니다. 하나의 춤이다. 시야 너머의 존재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호기심이 필요하다. 이러한 다양한 관점과 호기심은 법칙이 아니라, 하나의 태도이자 방향을 찾기 위한 수단이며, 다차원의 나침반이다. 우리가 미쳐 상상하지 못했던 다양한 차원으로 이끌어줄것이다.


생각의 형태: 언어가 가진 한계점. 이미지와 결합을 통해 새로운 언어를 구성한다.

언어는 숨쉴 때 필요한 공기나 유영할 수 있는 바다 같은 역활이다. "우리는 언어라는 유산에 갇힌 낡은 경향성의 죄수들" 새뮤얼 하야카라는 말처럼 강력한 힘에도 불구하고 또한 덫이 될 수 있다. 인위적 한계 너머의 가능성을 차단 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언어는 사고의 도구이자 가장 적합한 설명 수단이라는 특권적 지위를 누려왔다. 반면 이미지는 볼거리와 예술의 영역으로 오랫동안 밀려나 있었다. 이런 편견의 기원은 플라톤이 착각을 일으키는 지각의 특성을 언급하며 지각에 대한 깊은 불신을 토로 "사물이 물속에서 굴절되어 보이는 것은 무엇이 실재인지에 대한 강렬한 의문을 품게 한다." 눈이 아닌 눈을 통해 보는 세계는 불을 태양으로 착각할 수 있듯이 "그림자의 그림자"인 이미지들은 진리를 향한 탐색을 방해 할 수 있다.  플라톤은 글쓰기 역시 "기억과 생생한 이해에 대한 질 낮은 대체물" 이라 불신했지만 생각을 표한하기 위한 필요악으로서 문자 언어르 용인 했다.

데카르트는 인식하는 모든 것이 강력한 악마의 속임수일지 모른다 생각했다. 딱딱했다가 불 앞에서 녹아내리는 밀랍의 형태 변화에 대한 "지각"과 밀납의 실체는 변하지 않는다는 "실재"가 서로 충돌한다. 지각하는 능력은 감각이 아니다. 정신의 통찰이다. 인식에 대한 의문을 품으며 "정신에 들어온 모든 것은 꿈속 환상에 마찬가지로 참된 것이 아니다... 감각이나 상상력이 아니라 오직 지성으로써 지각되며, 만져지거나 보여서가 아니라 오로지 인식되는 까닭에 지각되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데카르트에게 사유는 모든 것이었고 사유는 곧 언어, 즉 내면적 언어를 의미했다. 이런 해체를 통해 정신은 감각으로부터 떨어져나왔고 신체에서 분리되어 언어의 바다로 떠올랐다. 하지만 데카르트는 우리 생활의 모든 행위는 감각에 의존하고 그 중 시각을 가장 고결한 감각이라 생각했는데 굴절 현상(파동이 서로 다른 매진을 통과할 때 발생)을 통해 무지개를 설명하고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플라톤의 물속 굴절 현상을 다시 논의 했다. 눈에 보이는 굴절 현상은 감각각 경험을 묵살하는 원인이 되기보다는 이성과 지각을 통해 완성됨을 보여준다.

평면속의 세계지도의 왜곡과 정보 상실은 부분적인 정보만 준다. 언어역시 위계적이고 조직적인 특성으로 인해 단편적인 표현이 될 수 밖에 없다. 반면 한장의 그림은 한번에 그 모습을 들어내고 서로 연결되고 시작과 끝도 없는 리좀적인 형태로 서 존재한다. 이미지는 존재 자체를 텍스트는 어떤 견해를 표현한다.

만화는 이 둘을 묶는다.만화는 텍스트처럼 순차적으로 읽으면서도 전체 구성을 하나의 이미지로 한 번에 보고 받아들일 수 있다. 좌뇌는 언어, 우뇌는 시각과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 좌뇌는 입력된 정보를 잘게 쪼개고 개별화해 분할하는 역활을 우뇌는 맥락안에서 전체상을 처리하는 역할을 한다. 진화론적 측면에서 보면 서로 다른 두 형태의 주의력을 동시에 활용하는 능력은 생존에 유리. 만화를 통해 문자와 그림들은 오랫동안 떨어져 있다가 이제야 비로소 공존하게 된다. "한쪽 없이 홀로는 절대 표현할 수 없는" - 로버트 하비의 말처럼 독특한 의미를 만들어낸다. 서로를 침투하고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 서로 섞이면서도 다른 표현 방식 사이에서 일어나는 굴절 현상은 공명을 배가시키는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 읽고 보는 또 보고 읽는 역동적인 순환 과정을 만들어낸다. 이는 동시에 하나 이상의 방향에서 바라보는 이중 방향성을 자아내고 이 과정은 플랫 랜드를 탈출해 정보를 교환하는데 필 수 적인 과정으로 담화의 심오한 층의를 파헤친다. 수장 랭거가 인용한 버트런드 러셀의 언명처럼 "우리는 모든 유비적 관계를 표현하는 언어를 구성할 수 없다. 만약 그것이 가능했다면 우리에게 언어를 잘못 해석하려는 성향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파편화된 요소와 이 요소들을 병치라는 이중적 특성을 가진 만화에서 유비적 관계를 표현하는 언어의 형식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복작하게 얽힌 인간의 사고를 포착하고 표현하는 또다른 수단이자 앞으로의 모험에 딱 들어맞는 매개체가 될 것이다.


생동하는 인간 신체:  우리는 머리속 생각을 기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다 깊은 이해를 추구하고 그과정에서 생각을 얻기 위해 그리고 그림을 파악하고 관찰하는 역동적인 놀이가 필요

알바 노에에 따르면 "지각 경험은 우리에게 보여지는 대로의 사물과 접촉함으로써 사물과 만나는 방식 중 하나다."  상대적인 두가지 시각적 관점을 동시에 살펴보면서 우리는 경험을 처리한다. 우리는 매순간 이런 작업을 한다. 마사키 수와와 바버라 트베르스키가 말했듯, 그림은 자신과의 대화를 조율하는 수단이다. 우리는 생각을 지면에 옮기며 스스로의 세계에서 한 걸음 물러나 시각 기간과 관계 속에서 사물을 파악하는 능력을 활용한다. 개념 형성과 지각을 동시적으로 반복 작동시키면서 우리의 사유를 확장한다. 우리는 머리속 생각을 기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다 깊은 이해를 추구하고 그과정에서 생각을 얻기 위해 그린다.

루트번스타인에 따르면 예술에 조예가 깊은 과학자들이 새로운 발견에 잇어 분명 유리하다. 그들은 탁월한 예술 감각으로 사물과 현상을 다른 측면에서 관찰하고 놀이를 즐기며 관련성을 파악한다. 이로써 그들은 문제를 폭넓게 바라 볼 수 있다. 뛰어난 사상가를 탄생시키려면 뛰어난 관찰자를 먼저 육성해야한다.


5차원: 관점의 무한한 가능성 상상력을 통해 기존의 관점을 넘어 존재하지 않는 시각이나 접근 불가능한 차원을 발견 할 수 있다.

상상을 통해서만 우리 안에 웅크린 수많은 차원을 만날 수 있다. 우리에게 초능력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 내면의 여러 세계를 품을 수 있는 능력일 것이다. 우리 모두가 이 능력을 지니고 있다.


판에 박힌 길: 익숙함에 길들여 지지 말고 새로운 발검음을 옮겨라.

질문이 없는 인간은 죽은 것과 같은 상태이다. 반복적인 동작을 통해 학습이 필요없어지는 가소성이 우리를 습관의 노예로 만든다.

천체와 지구의 움직임을 관측하기 위해 인간이 고안한 도구가 거꾸로 "인간의 행동을 일치시키는 메커니즘" (루이스 멈퍼드) 으로 변모했다. 

판에 박은 듯한 길이 생기겠지만 우리는 계속 노래학, 춤추고 새로운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묶인줄: 꼭두각시의의 묶인 줄을 발견하기 위해선 경계를 허물 질문과 관찰이 필요하다.



백터의 세계: 우리는 쉴 새없는 움직이는 힘의 상호작용으로 탄생하며 언제든 변할 수 있는 발전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고정된 힘이 아닌 쉴 새 없이 움직이는 힘의 상호작용으로 즉 벡터들의 수많은 조합으로 탄생한다. 이는 고정된 존재도 종료된 존재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든 변할 수 있고 변하기 쉬운 특성을 지닌다.



자각: 표준화에 나를 가두지 말고 변화 무쌍한 다양한 관점을 가지고 세상을 향해 눈을 뜨자.

표준화의 장점도 있지만 차이와 고유한 우리 존재의 구성 방식을 무시하면 우리는 민첩성을 잃는다. 모든 같은 사이즈의 신발을 신어도 나에게 딱 맞는 신발이란 찾기 어렵다. 변화 무쌍한 다양한 관점을 가져야 한다. 서로 다른 관점들을 취하고 서로 엮는다 해도 그 사이의 공간은 붕괴 되지 않는다. 각각의 관점이 관계 안에 새롭게 참여함으로써 또 다른 관점이 탄생한다. 우리의 눈이 시선의 끊음없는 움짐임을 통해 관점을 새롭게 하듯 사유를 촉발하고 전복하는 수단 역시 역동적인 관계안에서 발견된다. 언플래트닝을 통해 세상을 향해 눈을 뜬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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